한·중·일 원전 65년, 한반도 양옆에 박힌 112기

한·중·일이 원전 보유국이라는 사실은 새롭지 않다. 다만 이 차트의 목적은 그 이상이다. 65년치 호기를 지도 위에 시간순으로 찍어보면, 단순한 보유 현황이 아니라 동아시아 에너지 의존도의 흐름이 보인다.

이 글은 원전 찬반을 다루지 않는다. 데이터로 본 한·중·일 원전 65년의 풍경이다.

점 하나가 발전소 한 호기, 점 크기는 발전 용량(MW), 회색 점은 폐로·정지된 호기다. 1966년부터 2030년까지 65년치를 압축했다.

차트 읽는 법: 시간 · 위치 · 상태

이 차트는 세 가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첫째, 시간이다. 슬라이더가 1966년부터 2030년까지 흐르며 점이 하나씩 박힌다. 둘째, 위치다. 호기마다 실제 위경도 좌표에 점이 찍히기 때문에 어느 해안에 어느 시점에 발전소가 들어섰는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셋째, 상태다. 가동 중인 호기는 컬러 점, 폐로되거나 가동을 멈춘 호기는 회색 점으로 바뀐다. 이 세 축이 겹치면서 단순 통계로는 보이지 않는 패턴이 만들어진다.

이 차트가 필요한 순간: 의존도와 위치

한·중·일이 각각 몇 기를 보유하고 있는지는 검색 한 번이면 나온다. 하지만 어느 시기에, 어느 해안에, 어떤 속도로 늘었는지는 표로는 잘 와닿지 않는다. 이 차트는 그 흐름을 한 화면에 펼쳐놓는다. 결과적으로 동아시아의 원전 의존도가 어떻게 이동했는지, 그리고 그 이동이 한반도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가 드러난다.

일본: 가장 먼저 시작했고,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1966년 도카이에서 시작된 일본의 원전은 1970~80년대를 거치며 동해안과 서일본 해안 양쪽에 빠르게 점이 박혔다. 1985년 기준 일본은 동아시아 원전 호기의 90퍼센트를 차지했다. 그러나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사고 이후 흐름은 완전히 뒤집혔다. 사고 직후 가동 중이던 원전 11기가 자동 정지됐고, 안전 점검을 위해 전국 원전이 차례로 멈췄다. 2012년 한때 일본 전체에서 가동 중인 원전은 단 2기뿐이었다.

흥미로운 건 폐로된 원전이 후쿠시마와 동해안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차트를 보면 규슈의 겐카이, 시코쿠의 이카타, 시마네현, 후쿠이현의 미하마와 오이까지 일본 서쪽과 중부 해안에서도 회색 점이 늘어난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은 모든 원전에 대해 새로운 안전 기준을 적용했고, 이를 통과하지 못한 노후 호기들이 동쪽 사고 영향과 무관하게 줄줄이 폐로 처리됐기 때문이다. 사고는 후쿠시마에서 일어났지만, 그 결과는 일본 전국의 원전 지도를 바꿨다.

중국: 화석연료에서 원전으로

중국은 한참 늦게 시작했다. 1991년 친산 1호기가 첫 호기다. 그러나 2010년 13기였던 가동 호기 수가 2030년이면 79기까지 늘어난다. 20년 만에 6배다. 차트를 재생하면 황해와 동중국해 연안에 점이 빠르게 쌓이는 게 보인다.

이 폭증의 배경에는 두 가지 정책 전환이 있다. 하나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대기오염이 심각해지면서 석탄화력 의존을 줄이고 비화석연료 비중을 늘리기로 한 결정이다. 다른 하나는 2020년 시진핑 주석이 발표한 "2030년 탄소 배출 정점, 2060년 탄소중립" 목표다. 이후 중국은 광둥, 푸젠, 저장, 산둥, 랴오닝 등 동부 연해 지역에 원전 건설을 가속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현재 전 세계 건설 중인 원자로 63기 중 29기가 중국에 있으며, 2030년이면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원전국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주목할 점은 중국 신규 원전 대부분이 동부 해안에 집중된다는 사실이다. 전력 수요지인 동부 대도시권에 가깝고, 냉각수 확보가 쉽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내륙 원전 승인은 안전·환경 우려로 10년 넘게 보류 상태다. 결과적으로 중국 원전은 한반도 황해 건너편으로 점점 더 가까이 모이고 있다.

한국: 좁은 땅, 같은 자리에 계속 쌓이는 점들

한국 점들을 보면 면적 대비 밀도가 높다. 그러나 동시에 특정 지역에 강하게 몰려 있다. 부산 기장(고리·새울), 경주(월성), 영광(한빛), 울진(한울) 네 지역이 사실상 전부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1978년 고리 1호기가 가동된 이후 한국은 신규 원전 부지를 거의 추가하지 못했다. 신안 압해도, 충남 서산, 전남 고흥 등 여러 후보지가 검토됐지만 주민 반대로 모두 무산됐다. 결국 새 부지를 여는 대신 기존 부지에 호기를 추가하는 방식이 굳어졌다.

2026년 경상북도 영덕군이 신규 부지 유치를 신청한 것이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새 부지가 추가될 가능성이라는 점을 보면, 이 패턴이 얼마나 단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반도의 위치: 양옆 112기

2030년 한·중·일 138기 중 한국이 26기, 중국과 일본이 합쳐 112기다. 차트를 끝까지 재생해놓고 한반도를 가운데 두고 보면 그림이 직관적으로 들어온다. 황해 건너편 중국 동부 연안에 빨간 점이 빽빽하고, 동해 건너편 일본 동·서 해안에 컬러 점과 회색 점이 섞여 있다. 한반도 자체에도 점이 박혀 있다.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그 바다 건너편마다 원전이 모여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감시 체계는 어떻게 작동하나

한·중·일 3국은 2008년부터 원자력안전 고위규제자회의(TRM)를 운영해 왔다. 매년 3국 원자력 규제 책임자들이 모여 합동방재훈련 결과, 사고 정보 교환 체계, 장기 가동 원전의 안전 규제 경험 등을 논의한다. 2025년 7월에는 베이징에서 제15차 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EU의 EURATOM처럼 강제력 있는 통합 감시 체계는 아직 없다. 박근혜 정부 시절 "동북아원자력안전협의체" 구상이 제안된 적은 있지만, 합의가 실제 기구 설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결국 한·중·일은 정보 교환과 협의 수준의 협력에 머물러 있고, 각국 원전의 직접 사찰은 IAEA(국제원자력기구)를 통해 이뤄진다. 한반도 양옆에서 원전이 빠르게 늘어나는 속도와 비교하면, 감시 체계의 진도는 느린 편이다.

주의할 점: 이 차트가 답하지 않는 것

이 차트는 호기 수와 위치, 시간 흐름을 보여줄 뿐이다. 안전성 비교, 사고 위험 평가, 방사능 영향 시뮬레이션은 다루지 않는다. 같은 138기라도 어떤 노형이고, 어떤 안전 기준을 적용받고, 어떤 운영사가 관리하는지에 따라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이 글이 다루는 건 "어디에 몇 기가 있는가"까지다. "그래서 위험한가, 안전한가"는 별도의 영역이다.

데이터는 풍경을 보여주고, 판단은 그다음 단계다.


출처(외부 링크): 차트 데이터 및 본문에 인용한 자료의 원 출처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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