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는 병원은 줄고, 마음 다치는 병원은 늘었다
처음엔 피부과가 궁금했다. 번화가 큰 빌딩마다 피부과가 층층이 들어차 있는 걸 보면서, 도대체 얼마나 늘었길래 이럴까 싶어서 데이터를 찾아봤다. 그런데 막상 차트를 만들고 나니 정작 눈에 들어온 건 피부과가 아니었다.
2009년부터 2025년까지 9개 진료과목 의원 수 변화를 시각화했습니다. 2009년을 기준(0%)으로 잡고, 각 과목이 얼마나 늘고 줄었는지 비율로 표현했습니다. 데이터 출처는 국가통계포털 KOSIS.
막대가 오른쪽으로 길수록 많이 늘어난 것, 왼쪽으로 짧게 뻗은 과목이 하나 있다. 산부인과다.
피부과를 찾다가 정신과를 발견했다
피부과가 돈이 된다는 건 이미 알려진 이야기다. 치료보다 미용 시술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비급여 수익 구조가 탄탄하다. 레이저, 보톡스, 필러처럼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시술들이 주력이다 보니 단가도 높고 회전율도 빠르다. 성형외과도 같은 맥락이다. 두 과목 모두 차트에서 꾸준한 우상향을 그리는 건 그래서 예상 범위 안이었다.
피부과와 성형외과가 몰리는 건 단순히 수요 때문만은 아니다. 임대료 비싼 번화가에 굳이 들어서는 이유가 있다. 비급여 시술은 가격을 의원이 자율적으로 책정할 수 있고, 건강보험 심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피부과 한 곳이 하루에 소화하는 시술 건수와 단가를 생각하면, 같은 면적의 내과나 외과와는 수익 구조 자체가 다르다. 의대를 졸업하고 어느 과를 선택할지 고민하는 의사 입장에서 이 구조는 무시하기 어렵다.
그런데 정신건강의학과는 달랐다. 16년 만에 135% 증가. 2배가 넘는 숫자는 솔직히 예상 밖이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이 급증한 배경
공급이 늘었다는 건 수요가 그만큼 받쳐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몇 가지 흐름이 겹쳐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정신건강 관련 건강보험 급여 항목이 확대되면서 환자 본인 부담이 줄었고, 정신과 문턱이 낮아졌다는 인식도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코로나 이후 불안·우울 호소가 급증하면서 수요가 한 번 더 뛰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정신건강 관련 외래 진료 건수는 2020년 이후 가파르게 올라갔다.
구조적인 이유도 있다. 정신건강의학과는 고가 장비 없이 운영 가능하고, 상담 중심이라 회당 진료 시간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개원 비용 대비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출 수 있다는 점에서 의사 입장에서도 개원 매력이 있는 과목이 됐다.
조심스럽게 유추해보자면 사회 분위기의 변화도 빼놓기 어렵다. 가족이나 친구와 보내는 시간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전반적으로 많아진 것 같다. 유튜브, 게임, OTT처럼 혼자서도 시간을 채울 수 있는 것들이 늘었고, 그러다 보니 사람 사이의 소통이나 정서적 안도감 같은 것들은 오히려 얇아지는 게 아닐까. 매일 팍팍하게 일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시간을 죽이다 잠드는 패턴이 일상이 되면, 그 공백은 어딘가에서 채워야 한다. 다만 이 숫자가 단순한 의료 트렌드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산부인과 감소가 의미하는 것
산부인과가 줄고 있다는 건 여러 경로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저출생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따라붙는 맥락이었으니까. 하지만 차트로 직접 보니 느낌이 달랐다. 다른 과목들이 전부 오른쪽으로 뻗어나가는 동안 산부인과 막대만 홀로 왼쪽으로 파고드는 그림. 숫자보다 그 방향이 더 묵직하게 와닿았다.
출산 건수가 줄면 산부인과 수요가 줄고, 수요가 줄면 개원 유인도 사라진다. 지방에서는 이미 현실이 됐다. 분만실을 갖춘 산부인과가 없어서 출산을 위해 타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임산부가 늘고 있다. 의원 수 감소는 전국 평균이고, 지역별로 뜯어보면 격차는 훨씬 크다. 수도권에 몰리고 지방에서 사라지는 흐름이 산부인과에서 가장 먼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주의할 점: 숫자가 말하지 않는 것
이 차트는 의원 수의 변화만 보여준다. 진료의 질, 지역별 분포, 실제 환자 수와는 별개의 이야기다. 정신건강의학과가 늘었다고 해서 정신건강 치료 접근성이 충분해졌다는 뜻이 아니고, 산부인과가 줄었다고 해서 모든 지역에서 동일하게 감소한 것도 아니다. 수치는 방향을 보여줄 뿐이다. 그 안에 있는 맥락은 따로 들여다봐야 한다.
늘어난 병원과 줄어든 병원. 그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 걸까요.
데이터는 국가통계포털 KOSIS에서 직접 다운로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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