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5,000만원으로 서울 아파트 사려면 몇 년 걸릴까
지방에서만 살다 보니 서울 아파트 가격이 비싸졌다는 말은 막연한 뉴스 헤드라인이었습니다. 숫자로는 알아도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더군요. 그래서 직접 만들어 봤습니다. 연봉 5,000만원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전액 저축한다고 가정했을 때, 서울 25개 자치구의 아파트를 사는 데 몇 년이 걸리는지를요.
이 글은 통계 분석이 아니라, 한 장의 차트를 보고 떠오른 생각의 기록입니다.
2016년 1분기부터 2026년 1분기까지, 10년간 서울 25개 자치구의 내집마련 소요 연수를 분기별로 담았습니다.
차트 읽는 법: 한 푼도 쓰지 않는다는 가정
X축은 내집마련에 걸리는 연수, Y축은 자치구 순위입니다. 수치는 KB부동산이 발표한 ㎡당 매매평균가에 국민평형(전용 84㎡)을 곱해 산출한 가격을, 연봉 5,000만원으로 나눈 값입니다. 세금도, 생활비도, 교통비도 모두 0원으로 가정한 극단적인 계산입니다. 그러니까 이 숫자는 가능한 최단 기간이고, 현실의 기간은 여기서 곱절은 더해야 합니다.
강남구 63년이라는 숫자
2026년 1분기 기준 강남구는 63년입니다. 한 푼도 쓰지 않고 63년을 모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25세에 입사해 88세까지 단 한 번도 돈을 쓰지 않아야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사실상 평생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숫자에는 두 가지 함정이 더 있습니다. 첫째, 그 63년 동안 집값이 가만히 있을 리 없습니다. 둘째, 실제 사람은 생활비와 세금을 써야 합니다. 두 변수를 반영하면 실질 기간은 100년을 넘어갑니다. 인간의 평균 수명을 초과합니다.
10년 만에 세 배가 된 격차
2016년 강남구는 19년이었습니다. 그때도 길었지만 인생 안에 들어오는 숫자였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63년입니다. 정확히 3.2배가 되었습니다. 같은 기간 평균 임금 상승률은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합니다.
이 차트의 진짜 메시지는 강남구가 비싸다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아무리 노력하고 벌이를 늘려도 자산 가격이 더 빠른 속도로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노력의 가속과 자산의 가속이 서로 다른 차선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도 거래는 일어난다
이 가격에도 거래가 있다는 사실이 가장 흥미롭습니다. 누군가는 살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 인원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서울 인구는 전국 인구의 약 18%를 차지하고, 수도권 전체로는 절반을 넘어갑니다.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누구는 부모로부터 받은 자산으로, 누구는 십수 년 전에 진입해서, 누구는 영끌이라는 단어로 설명되는 무리한 레버리지로, 또 누구는 전세라는 한국식 임시 정착 형태로 버티고 있을 겁니다.
레버리지 없이는 가시권조차 없다
그나마 가격이 현실적인 외곽 자치구를 보더라도 30년 안팎입니다. 도봉구가 14년, 강북구·금천구가 15년 수준입니다. 이 숫자조차 한 푼도 안 쓴다는 가정 위에 서 있습니다. 실제로는 대출이 필수이고,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끝까지 끌고 가면서도 이자와 원금, 생활비, 세금을 모두 감당해야 합니다.
결국 서울에서 집을 산다는 행위는 단순한 구매가 아니라, 인생의 가장 긴 시간을 한 자산에 묶어두는 결단입니다.
그들만의 도시
강남 11개구와 비강남 14개구의 격차는 차트가 흐르는 동안 점점 벌어집니다. 한강에 가까운 12개 자치구는 차트 상단에 정확히 몰려 있고, 그 아래로는 또 다른 서울이 있습니다. 같은 도시 안에서도 30년 이상의 갭이 벌어진 지역은, 어느 순간부터 서로 다른 세계가 됩니다. 옆 동네인데 한쪽은 평생 안에 닿을 수 있고, 한쪽은 닿을 수 없는 도시. 그게 그들만의 도시라는 말의 진짜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청년들은 서울에서 밥만 먹고 살아도
지나가는 말로 청년들은 서울에서 밥만 먹고 살아도 잘 사는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농담처럼 들렸는데, 이 차트를 만들고 나서 다시 생각하니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자산을 형성할 여유가 없는 도시에서 일상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이미 큰 일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일자리도 서울, 집도 서울, 무조건 인서울이라는 정서와 한편에서는 수도권 과밀을 풀어야 한다는 정책 방향이 늘 충돌합니다. 차트를 보면 정책이 왜 그토록 절박해야 하는지 이해가 됩니다. 동시에 왜 사람들이 서울을 떠나지 못하는지도 함께 보입니다. 둘 다 합리적이라서 더 풀기 어렵습니다.
주의할 점: 이 글이 답하지 않는 것들
이 글은 서울 부동산 시장 전망을 담지 않습니다. 매수 매도를 권하지도 않고, 특정 지역을 추천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한 장의 차트가 보여준 격차의 속도와, 그 안에서 떠오른 질문들을 적었을 뿐입니다.
차트 속 수치는 가능한 최단 시나리오이며, 실제 내집마련 기간은 개인의 소득, 자산 형성 시점, 대출 조건, 가구 형태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투자 판단은 본인의 책임 아래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 장의 차트가 던지는 질문은, 답보다 길게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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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외부 링크): 차트의 원본 데이터와 가격 통계는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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